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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법석

Vol.236 2019년 08월호 계율을 공부하는 기준, 삼취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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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8-16 15:1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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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에 가야할 길을 보여주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 부처님께 귀의한 나는 이 세상에서 빛과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진 길을 봅니다.

이해와 사랑의 길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한 나는 행복의 길로 통하는 갖가지 문을 여는 법을 배웁니다.

화합과 깨달음 속에 살아가는 공동체인 승가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한 나는 수행의 장애를 없애주는 그 환한 빛의 도움을 받습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원하고 불행을 싫어합니다. 계율의 법회는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우리가 불행을 원하지 않고, 행복을 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내가 하는 생각과 말, 행동이 모두 행복의 씨앗을 뿌리는 지 불행의 씨앗을 뿌리는 지 생각을 하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계율은 스스로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번뇌를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번뇌는 도적과 같습니다. 나의 청정법신, 원만보신의 무량한 공덕을 다 빼앗아가고 온갖 고통만 주는 것입니다.

계율은 행복으로 가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함께 지켜야 할 법칙입니다. 그 법칙을 잘 지키면 행복하고 잘 못 지키면 불행해지는 겁니다. 계율은 고통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직접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입니다. 스스로 이웃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켜주는 지침입니다. 계율의 기본은 정념, 깨어있는 마음입니다.

 

집 주인이 도둑이 언제 오는지도 모른 채 잠들어있다면 집안 모든 재물들을 도둑맞게 됩니다. 그러나 주인이 깨어있다면 도둑은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번뇌라는 도둑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켜보고 있으면 그 도둑이 바로 친구가 됩니다. 도둑과 친구는 둘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리석으면 도둑질을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친구가 되어 도둑을 몰아낼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은 번뇌라는 도둑을 완전히 몰아내신 분이고, 우리 중생들은 도둑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라 생각하며 그 속에 빠집니다.

번뇌가 자신이기 때문에 번뇌로 만들어진 자신, 오온이라고 하는 것으로 만들어진 거짓된 나에게 이름을 붙이고, 이 이름을 향해 누군가 헐뜯고 비난하면 욕을 하고 화를 냅니다. 그러면 자기의 행복이 사라집니다. 불행 속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내 몸뚱이와 이름이 거짓이란 사실을 알고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 누군가 나를 헐뜯고 비난하더라도 혹은 칭찬하고 찬탄하더라고 그것에 흔들릴 일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볼 수 있어지고, 이 때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평등한 자비심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 모두를 똑같이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람들의 기쁨, 슬픔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정념正念, 언제나 깨어있으면 몸과 마음 그리고 세상의 흐름을 자각할 수 있으며, 나와 사회를 해치는 일은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고 가족과 사회를 보호하며 안전하고 행복한 현재와 미래를 지켜줍니다. 정념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실천적 표현이 바로 계율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생각이 안정되고 말이 부드럽고 온화해지며 행동이 항상 자비롭고 지혜로워지며, 남을 도와주려고 하는 이타적인 마음으로 평화롭게 존재하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정념, 계율과 전념, 집중 그리고 반야지혜를 항상 함께 수행하며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념을 수행하면 전념이 생기고, 전념을 바르게 수행하려면 반야지혜가 필요하게 됩니다. 또한 계율은 선정의 근원이며 선정에서 통찰력이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정념수행은 고요하고 집중된 상태로 우리들을 이끌고, 더욱 현명하고 통찰력있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계율은 사랑 그 자체입니다. 사랑은 상대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보호하며 행복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정념수행을 통해 서로를 보호하고 더 깊은 평화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념수행, 계율수행은 사랑의 완성입니다. 완성된 사랑은 너와 내가 하나다, 부처와 중생이 하나다라는 언젠가 자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 마음속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제 마음속에 없다면 저는 여러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제가 없다면 여러분은 제 얼굴도,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들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모든 타인은 내 마음속에 있고, 나 역시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내 삶의 모든 평가가 다른 사람들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럼 나와 남이라고 하는 것이 본래 하나라는 사실을 알면 남들이 고통스러워할 때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가 그 고통과 하나가 되어 치유해줄 수 있는 열린 마음, 거룩한 사랑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계율을 공부할 때 보통 세 가지 기준으로 공부합니다. 이 세 가지 기준을 삼취정계三聚淨戒라고 합니다. 섭율의계攝律儀戒, 섭선법계攝善法戒, 섭중생계攝衆生戒입니다.

 

섭율의계는 일체 모든 악을 그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악을 그친다. 악을 행하지 않겠다.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미움 받을 일도 없습니다. 섭율의계는 절대로 남을 해치지 않겠다, 훔치지 않겠다. 그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계율을 완성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섭선법계가 필요합니다.

섭선법계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중생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계율의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섭율의계에서 훔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섭선법계에서 보면 훔치지 않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따뜻하게 먹이고 입히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섭선법계가 끝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일이 한 가지 남아있습니다.

바로 불법을 가르쳐주는 일, 섭중생계입니다.

 

힘든 이가 추위와 배고픔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이제 그 사람에게 불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와 같은 법들을 하나씩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배고프고 추운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들을 도와주고 성실하게 노력해 인격자로 자라나게 되고, 부처님의 성스러운 터가 그 마음속에도 자라나게 됩니다. 섭중생계, 중생을 포섭해서 불법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공덕을 다 갖출 때까지 도와주는 것이 섭중생계의 뜻입니다.

 

우리들, 중생의 삶 속에는 삼취정계의 계득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삼취정계의 계득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계율이라고 하면 무엇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며 배우고 또 익혀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잘 하는 사람을 율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율사는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세계에 이르도록 끝까지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마음속에는 삼취계득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세 가지 거짓된 것이 우리 본성을 덮고 있습니다. 번뇌가 청정법신을 가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지혜를 가로막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차별심이 자비를 가리고 있습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부처님께 귀의하고 가르침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공덕과 가르침의 공덕, 승가의 공덕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와 불안함을 없애줍니다. 삼보에 귀의하면 자연스레 모두를 평등하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점점 자랍니다. 우리의 청정과 지혜, 자비를 가리고 있는 먹구름이 하루아침에 생겼다면 금방 사라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시작을 알 수 없는, 과거 무량겁부터 내려왔기에 이런 먹구름을 지우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정진해야 합니다.

 

삼취정계를 수행하면 내 마음속에서 청정법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삼취정계에 미혹하게 되면 탐진치 세 가지 거짓에 얽히게 됩니다. 탐진치를 뒤집으려면 삼취정계를 일으켜야 하고, 삼계를 일으키려면 삼행三行, 청정행 지혜행 자비행 세 가지 수행을 해야 합니다. 삼행을 일으키면 해탈을 이루게 됩니다.

삼취정계를 원만히 수행할 때 우리 마음에는 지극히 고요하고 평화로운 행복이 찾아옵니다. 고요하고 행복한 마음이 될 때 불보살의 마음이 우리들의 마음에 비치게 됩니다. 그러면 일체 중생의 모든 심사도 보이게 되고, 일체 모든 부처님의 공덕도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차별 없이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불법을 공부할 때 부처의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서원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오로지 한 가지, 중생들의 고통을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불법에 귀의하고, 매일매일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며 정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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