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戒, 일체 선법善法의 시작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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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佛紀2563)


2019

비니법석

Vol.233 2019년 05월호 계戒, 일체 선법善法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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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5-23 16:1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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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한국불교에 있어 수행자들과 불자님들이 혼탁한 이 세계를 바로잡기 위해서 부처님의 가장 근간이자 일체 모든 수행법과 믿음의 시작인 비니, 즉 계율이 바로 서야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계율이란 무엇일까요?

 

부처님 법은 인과因果의 법입니다. 무수히 많은 부처님 경전과 조사어록祖師語錄 속에서 발무인과撥無因果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발무란 없다는 뜻입니다. ,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은 수행자나 불제자들은 절대 발무인과 하지 마라, 인과를 없애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인과를 믿지 않는다, 인과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깨달음이란 것은 과보果報입니다. 깨달음의 과보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깨달음의 인이 있어야 합니다. 열반을 증득하고자 한다면, 열반의 증득 또한 하나의 과보이니 그 열반의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인을 심지 않고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열반을 얻을 수 없습니다. 깨달음, 열반이란 우리가 스스로의 불성을 보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바르게 알지 못한다면 깨달음을 행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지월指月이란 말이 있습니다.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하늘에 떠 있는 달과 같은 것입니다. 달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손가락은 넣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손가락이 없으면 우리 중생들의 눈에는 달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니, 어둡기 때문입니다. 이 어둠이 바로 무명無明입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는 절대 달을 볼 수가 없습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어야만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는 과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계는 세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범어로 첫 번째는 비니, 두 번째는 시라, 세 번째는 파티모카(바라제목차)라고 합니다.

비니를 번역하면 율입니다. 율을 다시 법이라고도 합니다. 율법이란 본보기입니다. 본보기는 우리가 따라야하는 부처님의, 성인의 모습입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는 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부처님께서 본보기를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과 범하는 것, 여는 것과 닫는 것에 대한 가르침. 그리고 만약 계율을 범했다고 한다면 그 계율이 가벼운 것인지 무거운 것인지, 만약 계를 범했다면 어떻게 참회를 하고 어떻게 청정을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본보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니, 율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금구성언金口聖言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불성을 깨달은 분입니다. 그 불성에는 지혜의 바다가 한없이 넘쳐 흘러나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 즉 자비의 바다, 지혜의 바닷속에서 흘러나온 것이 바로 계율입니다.

불성佛性이란 무엇일까요. 불성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어떤 이들은 부처님의 계율은 2600여 년 전에 인도 땅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의 계율은 변하고 달라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시대에 맞춰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불성은 바뀌지 않습니다. 삼천 년 전에도, 지금도, 삼천 년 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불성입니다.

이 불성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일체중생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명의 업에 의해 불성이 가려져 있습니다. 불성을 찾고, 문을 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계율입니다. 오로지 계율로만 불성을 열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불성의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수계식을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불성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불성 속에는 일체 선법善法이 존재합니다. 선법이 자라났을 때 악업은 사라지고 고와 번뇌로부터 벗어나 행복을 증득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계법을 제정해 놓으셨습니다. 이 계법을 우리가 수계를 통해 받아 지닙니다. 계를 받아 지닌 다음 우리는 행 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라가 필요합니다.

시라를 번역하면 계입니다. 계는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지만, 크게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청량입니다. 두 번째는 금지, 세 번째는 경책警責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비니에서 우리는 자신의 업력 業力 과 번뇌를 하나하나 해결해가며 청량함을 얻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법을 통해 업력과, 업력에서 발생된 악업惡業들을 하나씩 금지시켜 나갑니다. 교법을 가지고 수행의 씨앗을 하나하나 심어나가야 합니다.

 

씨앗이란 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파티모카(바라제목차)가 있습니다. 바라제목차는 별해탈別解脫 혹은 처처해탈處處解脫이라고도 합니다. 인에서 발생한 과보를, 몸과 입으로 범한 허물을 하나하나 따로 해탈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교법에 의해 수행을 해나가면 반드시 해탈에 이르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내 삶 속에서 무수히 많은 번뇌를 벗어난 청량함을 얻으면 해탈로 들어섭니다. 끊임없이 수행하고 기도해나가면 반드시 장래에는 부처님께서 이루는 열반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계율을 바로 파티모카 즉, 바라제목차라고 합니다.

비니, 시라 그리고 파티모카에 대한 개념을 우리가 확실하게 이해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수행과 믿음, 기도가 무엇인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지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율이란 우리의 마음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입니다. 수계식을 하는 순간 삼귀의를 통해 삼보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발생됩니다. 그 믿음 속에서 부처님의 불법을 올곧게 배워나가야 되겠다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형상이 생깁니다.

우리의 근본 스승은 석가모니부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법을 지켜나가야겠다는 믿음이 생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형상이 생겼을 때 이것을 계체戒體라고 합니다. 우리들 마음속에 계체가 형성됐을 때 비로소 불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율은 불제자에게 있어 바른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바른 수행의 시작입니다. 계율을 벗어난 모든 행위는 우리를 고통의 바다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바르다는 것은 삿되지 않고 왜곡되지 않았으며 거짓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일체의 선법은 계율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일체의 선법이란 무엇일까요?

 

불교에는 오승五乘 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인승人乘, 천승天乘,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 그리고 일성인 불성佛性이 있습니다.

인승이란 인간에 태어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을 갖춘 가르침입니다. 천승이란 천신이 될 수 있는, 하늘에 태어날 수 있는 가르침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승과 천승은 삼계三界의 세계로 갑니다. 중생은 이 세계에서 끊임없이 윤회를 합니다. 이를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라 하는데, 이 세계를 뛰어넘는 것이 성문승입니다.

선법이 있어야 증득證得을 통해 보살성을 뛰어넘어 불성의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선법의 시작이 바로 비니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선 비니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놓았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하나 배워나감으로 우리는 깨달음의 길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계율이 왜 소중한가와 계율을 따랐을 때 어떤 이익이 있는지, 또 계율을 위배하면 어떤 폐단이 있는지 경전을 보며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 소승경전 중 반니원경般泥洹經을 보면 부처님께서 입멸에 드실 때 아난이 부처님께 여쭙니다. “세상에 부처님이 사라지고 나면 스승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비구가 만약 계법을 받든다면 이것이 너희들의 큰 스승이니라. 가령 내가 세상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고 답하셨습니다.

이때 비구란, 꼭 비구 스님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 모든 불제자를 뜻합니다. , 불제자가 만약 계법을 받든다면 석가모니부처님과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법을 지키는 순간 부처님이 늘 우리를 옹호하고 가피를 내려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믿음입니다.

 

대승경전 중 열반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성을 보고 대열반성을 증득하려면 반드시 깊은 신심으로 청정계를 수지해야한다. 만약 이 경을 수지하면서 청정계를 훼범毀犯하면 이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다. 나 역시 이 경을 수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부처님이 계실 때 마구니魔仇尼가 찾아와 부처님 빨리 입멸에 드십시오. 부처님이 입멸에 드시면 나의 세상이 옵니다고 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정법은 그 어떤 것으로 훼손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마구니는 말법시대에 나의 권속, 나의 제자들을 출가시켜 부처님의 정법을 훼범하고 훼손시키겠습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 때 부처님은 가볍게 탄식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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