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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비니법석

Vol.232 2019년 04월호 삶을 바로 잡아주는 부처님의 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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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맑은소리맑은나라 작성일19-04-29 17:1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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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사위성에 계실 때, 한밤중에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와 부처님을 찾아뵙고 자신의 의심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질문을 했습니다.

 

안으로의 엉킴이 있고 밖으로의 엉킴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엉킴으로 뒤얽혀 있습니다. 고따마시여, 당신께 그것을 여쭈오니 누가 이 엉킴을 풀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부처님이 답하신 게송으로 답하시길,

통찰지를 갖춘 사람은 계에 굳건히 머물러서 마음과 통찰지를 닦는다. 근면하고 슬기로운 비구는 이 엉킴을 푼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무상하며, 통찰지로 볼 때 그 괴로움을 역겨워하게 되니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도다. 항상 계를 갖추고 통찰지가 있으며, 깊이 삼매에 들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근면한 자는 건너기 어려운 폭류를 건넌다.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더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며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계에 굳건히 머물러라는 것은 계를 철저히 봉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근면한 사람이란 정진하는 자, 정진은 모든 오염원을 태워버리기 때문에 근면한 자라고 합니다. 근면하고 슬기로운 자는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기 때문에 비구라고 하며, 그 비구가 바로 엉킴을 푸는 자입니다. 도의 순간에 엉킴을 풀기도 하고 과의 순간에 엉킴을 푼 자가 되어 세상에서 최상의 공양을 받을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계는 단속이라고도 합니다. 단속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계목을 통한 단속, 마음 챙김을 통한 단속, 지혜를 통한 단속, 인욕을 통한 단속, 정진을 통한 단속이 있습니다.

계를 잘 갖춘 것을 계목을 통한 단속이라 합니다. 눈의 기능을 보호하고, 눈의 기능의 단속을 실행하는 것을 마음 챙김의 단속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세상에는 흐름들이 있나니 마음 챙김이 그들을 저지한다. 흐름들의 단속을 나는 말하노니 통찰지가 그들을 저지한다.

 

이것이 지혜를 통한 단속입니다. 추위와 더위를 잘 견디는 것은 인욕을 통한 단속입니다. 감각적 욕망에 생각이 일어났을 때 참지 못하는 마음은 정진을 통해 단속할 수 있습니다. 범하지 않는 것을 계라고 합니다. 수지한 계를 몸과 입으로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 ‘계행戒行이라는 뜻에서 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계행이란 무엇일까요? 계행은 간증시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계를 잘 지녀 몸의 업 등이 흩어짐이 없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지탱한다고도 하며, 유익한 법들의 기초 토대가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토대가 되기에 지탱이 되고, 지탱이 되기 때문에 흩어지지 않습니다. 흩어지지 않기 때문에 안정이 됩니다.

지계는 나쁜 계행을 털어버리는 작용과 비난받지 않는 덕을 성취라고 합니다. 깨끗한 것이 계에 나타남이고, 수치심과 양심이 계에 가까운 원인이라고 지자들은 말합니다. , 계는 몸의 깨끗함, 말의 깨끗함, 마음의 깨끗함을 나타냅니다.

계는 깨끗한 상태로 나타나고, 그렇게 얻어진 양심과 수치심이 있을 때 계가 일어나고 지속되는 것입니다.

 

계목을 청정하게 유지하면서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세상의 주인이 제정하신 계의 단속을 파하지 말라. 그럼으로 자신의 이로움을 구하는 모든 사람들이여. 작은 숲 속의 원숭이처럼, 밀림의 길들지 않은 사슴처럼, 안절부절 못 하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두리번거리지 말지어다. 두리번거리는 숲 속의 원숭이 같은 마음의 노예가 되지 말지어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는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은 제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보다 먼저 돌아가신 제자도 있었습니다. 죽음에 이른 한 제자가 돌아가시기 직전, 부처님을 한 번만 뵙기를 청했습니다. 부처님은 이에 기꺼이 문병을 하며 제자에게 이르시길 몸과 뜻으로 지금껏 살아오며 허물될 일이 조금이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그래, 너는 분명 선처 善處 에 이를 것이다.”

부처님의 생전 기록들이 율장에 남아있습니다. 다른 경전들은 대승과 소승, 팔리어, 산스크리트어, 한역, 우리말 등에 따라 혼란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율만큼은 대 ˙ 소승을 망라하고 어느 누가 보아도 혼란이 없습니다. 계율은 엄정하고, 기강이며 법도이고 기쁨이자 따뜻함입니다.

 

쾌락은 불덩이를 안고 있을 때의 고통보다 더 격렬한 고통의 결과를 가져오건만 파계한 자는 그것을 버리지 않으니, 그에게 무슨 행복이 있을까.

계를 파한 자는 말총 밧줄로 짓뭉개는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받을 것인데, 남의 경배를 받음에 무슨 행복이 있을까.

계를 파한 자가 신심 있는 자들의 합장 공경을 받는 것에 무슨 행복이 있을까. 창으로 찌르는 고통보다 더 예리한 고통의 원인일 뿐.

자제함이 없는 자가 옷을 수용함에 무슨 행복이 있을까. 그것으로 인해 오랫동안 지옥에서 불타는 철판에 닿음을 감수할 것을.

비록 걸식한 음식이 달콤하지만 계를 파한 자에게는 톱과 같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불타는 무쇠덩이를 삼켜야 하리.

계를 파한 자들이 침상과 의자를 수용할 때 비록 행복이라 여기지만 고통일 뿐, 그 때문에 그들은 오랫동안 불타는 쇠침상과 의자에서 고통스러워하리니.

계를 파한 자가 신심으로 보시하며 절에 머무를 때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 그 때문에 불타는 가마솥에 머물러야 할 것을.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탐욕 등 쓰레기를 가지고, 오염원들이 흐르며 안이 썩었다고 그를 꾸짖으며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절제되지 않았고, 사문의 옷을 걸쳤을 뿐 사문이 아니요. 손상되었고 자기의 선근을 파버리고 사는 자의 목숨을 어찌 부끄러워 않으랴.

마치 장엄을 원하는 자가 오물을 버리고 시체를 버리듯이, 계를 지닌 고요한 분은 파계한 그를 버려버리니 그런 그의 삶이란 과연 무엇이던가.

두려움은 조금도 벗질 못했고 모든 증득의 행복으로 부터는 벗어나 버렸으니, 천상의 문은 그에게 굳게 닫혀있고 파멸제의 길에 올랐구나.

연민을 가진 자에게 계행이 나쁜 자를 제외하고 누가 다시 연민의 대상이 될까. 계행이 나쁜 것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결점이 많다.

 

자신을 반조함으로 계를 파함에서 위험을 보는 것을 알아채야 합니다. 그리고 계를 성취함에서 이익을 본다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계를 깨끗이 지니는 자가 발우와 가사를 수하는 것은 신심을 자아내게 하고 그의 출가는 분명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계가 청정한 비구의 마음에 자책 등의 두려움이 들어오지 않나니,

어두움이 해에 들어오지 않듯이,

계를 성취하여 빛나는 비구는 고행의 숲에서 빛난다.

마치 보름달이 허공에 빛나듯이.

계를 지닌 비구는 그의 몸의 향기조차도 신들을 기쁘게 하거늘.

계의 향기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하리.

계의 향기는 모든 향기 가운데 가장 수승하나니.

그것은 걸림 없이 모든 방향에 퍼진다.

계를 지닌 자를 위해서 한 행위는 비록 적을 지라도 큰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계를 지닌 자는 공양과 공경의 그릇이 된다.

금생에 번뇌들이 계를 지닌 자를 괴롭히지 못하고 계를 지닌 자는 미래의 고통에 뿌리를 끊어버린다. 인간의 행복이든, 천신들의 행복이든 계를 지닌 자가 원한다면 그것은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열반의 경지는 지극히 고요하나니, 계를 지닌 자의 마음은 그곳으로 달려간다. 계는 모든 성취의 뿌리라고. 현자는 갖가지 계 이익을 알아야하리.

 

청정도론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저는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계율과 함께 했습니다. 조금은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어설프고 뒤뚱거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를 바로 잡아주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계율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친근하고 따뜻하게 다가가도록 도와주는 것도 계율입니다. 계율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내 자신을 속박한다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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